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십자군의 이집트 원정 (문단 편집) === 살라흐 앗 딘 === 자신감이 생긴 유수프는 파티마 왕조라는 허물을 벗어던지기 앞서 몇가지 시험을 하였다. 그는 칼리파 알 아디드의 애마를 타고 궁전을 산책하는 등 칼리파에게만 허용된 특권을 행하며 파티마 왕실의 권위에 도전하였다. 그리고 결국 알 아디드가 사망하자[* 시리아 인들에 의한 독살 의혹이 다분하지만..] 파티마 왕조는 멸망하였다. 유수프가 이집트에서의 권력을 강화하자 자연스레 그의 주군인 누르 앗 딘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1171년 함께 케라크 원정에 나섰을 때에 유수프는 부친 아이유브의 위독함을 내세워 주군과 마주하기도 전에 회군하였다. 2년 후 아이유브가 병사한 것을 보면 이는 사실이었지만 누르 앗 딘과의 관계는 악화되었고 그 중재자 역할을 맡았던 아이유브가 사망하자 돌이킬 수 밖에 없었다. 이집트에서 바치는 연공이 너무 적다고 여긴 누르 앗 딘은 1173년 카이로에 특사를 파견한 후에도 별 차이가 없자 마침내 군사적 해결을 택하였지만 1174년 병사하였다. 같은해 파티마 조의 와지르였던 탈라이의 후손들이 시도한 복벽 움직임을 철저히 진압한 유수프는 완전한 이집트의 독립 군주가 되어있었다. 한편 아이유브 가문의 다른 일원들은 영토 확장에 나섰다. 1173년 살라딘의 조카 타키 앗 딘 우마르가 리비아를 점령하여 [[무와히드 왕조]]와 국경을 맞대었고 이듬해 동생 투란샤는 예멘을 정복하였다. 그리고 1174년 말 별 저항도 받지 않고 다마스쿠스에 입성한 살라딘은 바야흐로 대제국의 군주가 되어 있었다. 본인의 능력과 시대적 행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분류:십자군 전쟁]][[분류:이집트의 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